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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2 저작권에 발복잡힌 e-교과서
혹시 e-교과서를 아십니까? 정부는 내년부터 기존에 종이책으로 만들어졌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종이책과 함께 PDF 파일로도 함께 만들어 전국의 학생들에게 보급할 예정입니다. 이것이 e-교과서입니다.

하지만 e교과서와 디지털교과서를 혼동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디지털교과서란 기존의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용어사전 등 교육 콘텐츠를 하나의 태블릿 PC에서 동영상, 애니메이션 등 멀티미디어 자료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정부는 2013년 이후 전국적으로 디지털교과서를 확산할 계획이며, 현재 전국 132학교에서 시범적으로 디지털교과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e교과서는 기존 교과서를 단순히 PDF 파일로 만든 것이고, 디지털교과서는 기존의 교과서뿐 아니라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와 학습도구가 포함된 새로운 차원의 교과서입니다.

디지털교과서를 당장 보급하기에는 기술적, 시간적, 예산적 문제 때문에, 일단은 e-교과서를 배포하고 추후에 디지털교과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정부의 전략입니다.

그런데 IT의 시각으로 보면 이 e-교과서라는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단순히 기존의 책을 전자문서로 변환시키는 것이 교육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책가방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효과는 있습니다. 학교에 교과서를 놓고 와도 집에서 컴퓨터로 교과서를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IT를 겨우 책가방 무게 줄이는 데만 쓰는 것은 많이 아쉽습니다.

특히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e-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에 나눠준 e-교과서 제작 기술 가이드라는 것을 보면 이 같은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가이드는 “e-교과서는 반드시 CD-ROM에서만 실행될 수 있도록 하며, e-교과서의 모든 내용은 인쇄를 제외하고 불법으로 복사, 배포, 수정, 게재(인터넷)할 수 없도록 보안기능을 설정하라”고 돼 있습니다.

또 “서책형 교과서에서 e-교과서로 변환된 내용들이 추후에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여타의 방법을 통해 쉽게 텍스트로 변환해 사용할 수 없도록 설정하라”고도 돼 있습니다.

아이패드, 넷북 등의 확산으로 CD-ROM 자체가 없는 단말기가 늘어나고 있는데, CD로만 줘야 한다는 방침이 어처구니 없어 보입니다. USB 저장장치도 안되고, 클라우드 저장공간도 안됩니다. 친구들과 교과서 콘텐츠를 이메일로 파일을 주고 받을 수도 없고, CD를 잃어버린 친구한테 카피해줄 수도 없습니다.

3G 통신기술과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시점에서 10년 전 IT수준으로 e-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대부분 IT전문가들로 구성된 KERIS가 이런 가이드를 만들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KERIS의 항변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어제(21일) KERIS는 ‘e-교과서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의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참석한 천영세 KERIS 원장은 현재의 e-교과서를 보급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했습니다.

천 원장은 “교육정보화 전문기관의 수장으로서 어찌 보면 e-교과서가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말을 꺼내면서도 “기술은 한 없는 꿈이지만, 현실은 저 밑에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천 원장에 따르면, e-교과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저작권’입니다. e-교과서를 CD-ROM으로만 볼 수 있게 만든 것도, 인터넷에서 올릴 수 없도록 한 것도, 파일 복사를 금지시킨 것도 ‘저작권’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서야 인터넷에 올려놓고 원할 때마나 다운로드 하도록 하고 싶지만 저작권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 원장은 “복제를 허용하면 당장 출판사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소송이 들어올 것”이라며 하소연했습니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 e-교과서를 제공했다가 출판사로부터 8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 받았다는 사례도 들었습니다.

예산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e-교과서는 국.영.수 과목만 제공됩니다. 이는 전 과목을 e-교과서로 나눠줄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무상교육 단계의 초∙중학교의 교과서는 정부가 무상으로 나눠주기 때문에 전 과목을 제공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천 원장은 이 같은 전후 사정을 설명하면서 “욕 먹을 각오하고 e-교과서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약 속에서 탄생한 e-교과서라는 것이 교육 효과가 있을 것인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말이 e-교과서지 그냥 책의 내용을 그대로 모니터로 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분들 사이에서도 이 효과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은퇴한 한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의 책가방 무게를 줄이는 것, 디지털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디지털 파일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의견을 내 놓았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어떤 분은 시범적으로 e-교과서와 유사한 사업을 했었는데, 전자파일로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예산낭비라고 비판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2010/07/22 17:12 2010/07/22 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