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역대 한국 대통령 중에 IT 및 정보화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편의상 이하 DJ)일 것입니다. DJ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지식정보화 시대를 앞장서기 위해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IT벤처 육성 등을 집중 지원했습니다.

현재 한국이 UN 전자정부준비지수 1위를 기록하고, 세계 최고의 인터넷 사용률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DJ는 1998년 취임할 때 이미 74세의 노인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서거할 때까지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컴퓨터보다는 붓과 한자에 더 익숙한 세대입니다.

스스로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도 못하는 DJ가 지식정보화 산업의 중요성을 예견하고, 초고속인터넷과 정보화를 강력하게 밀어부친 것입니다. 과연 이 같은 판단과 추진력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지난 달 발간된 ‘김대중 자서전’을 보면 이런 정책이 나온 배경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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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에 따르면, DJ가 처음 ‘지식정보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감옥이었습니다. 1981년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세계최의 지식정보화 국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DJ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합니다.

“우리 민족은 21세기 정보화 사회에 큰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우수한 민족입니다. 새 정부는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가 지식 정보 사회의 주역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 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닦아 나가겠습니다”

국민의 정부 IT정책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인물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입니다.

1998년 6월 18일 DJ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손정의 사장과 만납니다. 당시는 외환위기로 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 입니다. DJ는 이들에게 한국 경제가 살아 나갈 길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이 때 손 사장이 대뜸 말했습니다.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입니다. 한국은 브로드밴드에서 세계 최고가 돼야 합니다.”

당시는 ‘브로드밴드’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 발언에서 영감을 얻은 DJ는 정보통신부에 초고속 통신망을 빠른 시일 안에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고,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초고속망에 대한 투자를 진행합니다. 관료들이 무모하다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빛과 같은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한 번 뒤처지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DJ의 염원대로 한국은 컴퓨터를 가장 잘 사용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됐습니다. 전자정부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DJ의 IT정책은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서전에도 이에 대한 자평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 IT업계는 소프트웨어 부문이 취약했다. 단 시간에 혼신의 힘으로 기반 시설은 구축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를 발전시켜야 비로소 진정한 지식정보 강국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이를 설파했지만, 우리 정부에서는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빌게이츠 회장도 2001년 DJ와 만나 한국의 SW 산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합니다.

“한국 IT산업의 하드웨어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몇 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초고속 통신망, 특히 학교 인프라는 그 혜택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소프트웨어는 더 분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약 10년이 지난 현재도 한국의 SW산업은 여전히 취약합니다. 2001년 당시보다 더 취약해진 모습입니다. DJ 정부 이후 노무현 정부도 ‘IT강국에서 SW강국으로’등의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숙제는 현 정부로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절반이 지났지만, SW업계는 이렇다 할 성과도 변화도 없습니다. 스마트폰 열풍 이후 취약한 SW에 대한 문제점은 많이 지적됐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논의되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어쩌면 한국의 IT정책은 DJ 이후 수년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10/09/13 15:09 2010/09/13 15:09
오늘(29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스마트폰 전자정부 추진 전략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정부가 모바일 오피스를 어떻게 도입하고, 공공 서비스를 어떻게 모바일화 할 것인지 계획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모바일 전자정부 계획이 처음 발표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행사는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는 처음에 약 200명을 계획했었는데, 사전등록자만 500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세미나 관객의 상당수가 공무원이었다는 점입니다. 각 중앙부처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소속의 공무원도 많았고, 법원, 경찰청 등 특수한 조직의 공무원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 이들은 대부분 각 조직의 정보화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왜 새벽밥 먹고 서울로 올라와 이 세미나에 참석해야 했을까요?

최근 정보화 담당 공무원들의 최대 고민은 ‘스마트폰’이라고 합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꿔놓을 듯한 분위기가 팽배하니 뭔가 보여줘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높은 분들이 “우리는 왜 스마트폰 서비스 안해?”라고 한 마디 하면,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가 되는 거지요. 뭔가 스마트폰을 통한 서비스를 하자고 제안해야 정보화 담당으로서 면이 서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몰라 머리만 아픈 상태라고 합니다.

이날 세미나에 전국각지에서 정보화 담당 공무원들이 몰려든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모바일 앱이라도 하나 만들어 보여줘야 하니까 혹시 세미나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다소 우려됩니다. 너도 나도 스마트폰 앱을 만들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무원들의 성과주의로 인해 탄생한 스마트폰 앱들이 매우 유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정부가 수 많은 웹사이트를 운영하지만, 활발한 업데이트가 일어나고 많은 이들이 정보를 찾기 위해 방문하는 사이트는 매우 드문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국민의 혈세만 낭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정보화 담당 공무원들이 모바일 혁명 시대에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되겠지요. 올해 UN전자정부 준비지수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한 성과를 계속 이어나가려면 모바일에 대한 기민한 대처가 필수적입니다.

그럼 정보화 담당 공무원들은 모바일 시대를 맞아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오픈API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 이 분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앱을 만들까’ ‘무슨 서비스를 제공할까’를 고민하지 말고 ‘무슨 정보를 오픈API로 공개할까’를 고민하시라는 얘깁니다.

정보만 공개돼 있으면, 앱과 서비스는 시장의 개발자들이, 기업들이 알아서 만듭니다. 여러 오픈API를 매시업 해 공무원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앱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것이 오픈이노베이션입니다. 굳이 정부가 세금을 들여서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입찰을 진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괜히 예산이 적다는 둥 욕만 먹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지자체 정보화 담당자는 본인이 속한 지자체의 관광정보나 숙박정보 등을 제공하는 앱을 만들겠다고 세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보유한 관광정보나 숙박정보를 오픈API로 만들어 제공하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지자체가 관광∙숙박정보에 대한 오픈API를 제공한다면, 누군가는 전국의 관광숙박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것입니다.

또 국세청은 모바일로 세금을 낼 수 있는 앱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오픈API만 만들면 됩니다. 그러면 국세, 지방세, 국민연금, 의료보험 모두 한번에 낼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할 것입니다.

행정안전부는 내년까지 100개의 오픈API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100개로는 부족합니다. 각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등 모두 ‘우리가 가진 어떤 정보를 공개할까’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2010/06/29 16:30 2010/06/29 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