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병정'에 해당되는 글 2

  1. 2010/12/15 한국과 똑 같은 일본의 SW 시장 구도 (1)
  2. 2010/04/01 한국형 스티브 잡스 10명 육성? (1)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의 병폐를 얘기할 때 반드시 지적되는 문제점 중 하나는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입니다. 고객->대기업SI업체->하청업체->재하청업체로 이어지는 이런 구조는 정보화 프로젝트에서 매우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갑이 100원으로 발주하면, 을이 80원으로 수주하고, 병은 다시 60원에 받아서 정에 40원에 일을 맡깁니다. 100원짜리 사업을 실행하는 정은 40원에 원가를 맞추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의 SW개발자는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야근과 과로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구조에서 SW업체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로 제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기업 하청업체로 전락해 하루하루 생명연장으로만도 벅찰 지경입니다.

정부도 이와 같은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하청을 최소화 하기 위해 정부의 소규모 정보화 프로젝트에는 대기업 입찰을 제한한다든지, 하청을 줄 때는 고객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든지 등의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한국의 고질적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세계 2위의 SW 시장을 자랑하는 일본은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지식경제부가 오늘(15일) 서울 잠실호텔에서 개최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컨퍼런스 2010’에서 일본의 SW 시장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일본은 한국보다 하도급 문화가 훨씬 더 심하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17년간 IT업계에 종사했다는 염재선 e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NTT그룹, 후지쯔, 히타치, 일본전기, 이토추, 노무라총연 등 대기업이 아니면 정보화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본은 한 번 같이 일한 사람에게 계속 일을 맡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업체가 진입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다고 합니다.

또 패키지 SW 산업이 IT서비스 산업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밖에 되지 않고, 개발 프로젝트가 70.4%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일본 IT산업은 내수시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SI개발 프로젝트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SW업체들이 설 자리는 없고, 결국 일본의 SW산업의 경쟁력은 떨어졌습니다. 수출 90억엔, 수입 2900억엔이라는 엄청난 무역적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SW업체인지 SI업체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회사들이 대부분이고, 경쟁력도 낮습니다. SW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더 많다는 점도 일본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죠. 일본의 SW 시장은 엄청나게 크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시장규모를 자랑합니다. 글로벌 업체들에게도 일본은 매우 큰 시장입니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지역별로 시장을 구분할 때, 미주(America)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아시아∙태평양∙일본(APJ)로 구분합니다. 아시아, 태평양, 일본을 별도로 구분했다는 것은 일본을 아시아라고 보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아시아에는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과 인도가 포함돼 있음에도, 일본만을 별도로 구별합니다. 일본 SW시장이 얼마나 큰 지 짐작케하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큰 시장에 있는 일본업체들은 해외 진출 따위는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본 시장에서만 잘해도 회사는 쭉쭉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인지 일본 정부는 하도급 및 SI 중심의 SW산업 구도에 대해 특별한 정책을 내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부에 찾아가서 하소연하는 업체가 별로 없는 탓이겠죠.

하지만 우리나라 업체들은 국내시장만으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국내 시장은 너무 좁기 때문에 어떻게 든 해외에 나가서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일본 업체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있는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하도급 구조가 된 것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내 법과 제도가 일본의 제도를 베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장환경이 전혀 다른데 같은 제도를 베껴온 것이 현재 SW 산업 병폐의 근본적 원인인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이 전혀 다른 처지에 있음에도 같은 제도를 수용한 과거의 정부와 관료들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2010/12/15 17:48 2010/12/1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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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지식경제부는 ‘한국형 스티브 잡스 육성 프로젝트 출범’이라는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이날 발표의 핵심은 ‘국가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라는 뛰어난 SW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재능있는 학생을 100명 선발해 1년 3개월 동안 3단계 교육 및 검증과정을 통해 10명의 인재를 ‘국가 SW 마에스트로’로 선정하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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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기간 동안에는 장학금, 노트북, 외국 견학, 국내외 프로젝트 연수 등의 지원도 할 예정이며 10명의 국가SW 마에스트로에게는 취업 및 창업을 지원한답니다.

뭐, 국가가 SW산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SW인재를 육성한다는데 딴죽을 걸 일은 아닙니다만, 과연 이 같은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특히 10명의 ‘국가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가 한국형 스티브잡스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의문입니다. 그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속단을 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속단을 한번 해 볼까요. 아마 저 10명의 마이스트로는 취업을 할 것입니다. 창업에 나서는 마에스트로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그 중 일부는 2~3년 안에 다시  취업 전선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국가 SW 마에스트로들은 삼성SDS, LG CNS, SK C&C,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 NHN, 엔씨소프트, 넥슨 중 한 곳에 취업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영어 실력이 조금 받쳐준다면 한국IBM, 한국오라클, 한국마이크로소프트도 하나의 취업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설사 취업이 아닌 창업에 나선 마에스트로가 있더라도 위에 언급된 회사 중 하나에 지독히 쓴 맛을 보고 창업을 후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이 SW개발자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10년이상 SW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국가SW마에스트로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10년 후에는 영업, 컨설팅, 관리 등으로 직업을 변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국형 스티브 잡스 육성’이라는 말은 공허한 외침입니다. 왜곡된 시장구조 안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1만명 육성해도 애플은 탄생하지 못합니다.

과거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는 “빌 게이츠도 한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SW불법복제율 ▲SW개발사는 대형 SI업체의 하청업체로서만 존재하는 시장구조 ▲SW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 ▲ ‘무조건 싸게’를 외치는 고객 ▲SW개발은 3D 업무로 인식되는 현실 등 무수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컴퓨터 공학과나 전산학과는 가장 경쟁률이 높은 과 중에 하나였습니다.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컴퓨터공학(전산학과)는 공대나 자연과학대학 내에서 가장 경쟁률이 낮은 학과라고 합니다. 졸업해봐야 별볼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아무리 인재를 육성해봐야 그 인재는 왜곡된 산업구조 안에서 소모될 뿐입니다.

정부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직접 육성하기 보다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탄생시켰던 실리콘밸리의 산업구조를 한국에서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것이 MB정부가 좋아하는 시장주의가 아닐까요.
2010/04/01 13:42 2010/04/01 13:42